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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시.

2009 올해의 좋은 소설

2009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소설 2009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소설
고은주, 김경욱, 김미월, 김애란 | 현대문학 | 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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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기스 중 엑기스만 모아 놓은 단편소설들
이제껏 읽었던 단편소설 집 중에서 가장 인상적임.
하나 하나 꽤 감탄스러웠다.

고은주 - 시나몬 스틱.
바람을 피는 남편의 상대의 전 남친에게서 싸이월드 쪽지를 받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며 자신을 조금은 객관적 입장에서 다시끔 돌아보는 주부의 이야기.
조금은 가식적이고 폼만 잡는 현대 여성이 자기 삶의 방식을 질문하는 새 개입자를 통해 자기 성찰을 함.  향이 사라진 계피스틱의 그럴싸한 겉모양 때문에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그녀와, 그런 계피스틱이 본질을 잃었으니 의미 없다고 하는 의협심강한 젊은 남자와, 제 역할을 못하는 계피스틱은 없으니만 못하다고 버리고 새로 구하라는 바람피는 남편.  계피스틱을 결혼의 은유로 사용된 것이 멋지다.   또 청소에 집착하는 결벽증과 푸른수염 사나이의 문같이 열고 나면 후회밖에 없는 언제 열릴지 무서운 남편에게로 열리는 문, 두 가지 설정이 여주인공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 도움이 된다.

김경욱 -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수백개의 수도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 일어난 세 개의 이상한 절도 사건.
고가제품들의 도난이 아니라, 돈이 되지 않는 서로 아무 관계도 없어보이는 세 물건의 행방.
그것들은 쪽방촌에서 손녀와 기거하고 있는 퀵배달로 생계를 유지하는 할아버지에게 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10살된 소녀가 정신이상을 보이자 그 원인을 찾아다니다가, 그 아이가 같은 반의 세명의 부유층 남자아이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혹은 그들의 부모를 합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그리하여 직접 심판을 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는 신께 자문을 구하고, 전쟁통에서 성립한 그만의 논리로 복수의 정당성을 찾고 마침내 복수를 실행하지만, 그 응징의 끝에 고통받는 자는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복수는 실패한 듯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소행의 죄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손녀의 원한을 갚기 위해 한 정의실천이라고 해도,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아도, 그가 한 짓은 산타에게도 신에게도 나쁜 짓에 속한 짓이니까.

김미월 - 정전의 시간
부처를 닮은 한 남자의 운명을 찾아 떠나 겪는 모험기.
자신의 갑갑한 현실을 타파하고 싶어하는 병태는 운명처럼 만난 여인을 다시 찾으면 왠지 모든일이 다 해결 될 것 같아, 무작정 그녀를 찾아 절을 찾는다.  도피성 환각을 실현하려는 슬픈 발버둥질.  잠깐의 정전처럼 그의 인생에도 잠시 어둠의 시간이 찾아왔던 것.  소설의 끝에 정전이 끝남은, 그의 방황의 끝을 상징하기도 한다.

김애란 - 그곳에 밤 여기의 노래
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소설.(최민식과 장백지가 출연했던 "파이란"과 비슷함)
루저가 사랑을 만나 개선하려는 소설으로 얼핏 보임.  근본적으로 바뀔 것 같지 않는 인성이 누군가의 관심으로 희망의 싹을 틔이는 것처럼 보여 감동이 잔잔하게 남는다.
주인공은 집안의 골칫거리로 말썽만 피우다가 결국 집에 있을 수 없어 홀로 도망치듯 상경해 택시운전으로 살아간다.  그 와중 단골밥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여자를 만나 반해 구애를 하고, 인생에 찌들어 있던 여자는 그와 결혼을 하지만, 사실은 척박한 한국 생활에서 병을 얻은 상태였다.  그녀의 사랑이 과분하다고 느끼긴 했었지만, 막상 몸이 상해 다 죽어가는 여자를 보니 배신감과 원망이 더 커졌고, 그녀의 죽음 후로도 그는 그녀의 사랑에 의문만 남아 자기파괴적이 되어간다.  하지만, 그녀가 남겨준 중국어 테이프로 그녀가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아껴주었다는 확신이 조금씩 들면서 그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 간다.

김연수 - 세계의 끝 여자친구.
완전 두서 없다.  뭔가 톱니바퀴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건데, 어쨋든 서로 연관도 없어보이는 일말의 사건들을 엮어 주인공이 실연을 직시하고 남에게 이야기 하게 될 수 있게되기까지의 과정이 쓰여져있다.   A에서 B로 추론 되기에 그 관계가 미약한데, 작가는 자꾸 A를 근거로 B라는 결과물의 이야기를 널어놓고, 마찬가지로 B로부터 C라는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어쨋든 주인공 남자는 도서관에서 세계의 끝 여자친구라는 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시로 인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그 새로운 사람에게 자신의 옛 여자친구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라는 소설.  소설의 내용보다는 소설 자체가 더 흥미롭다. 

윤성희 - 웃는 동안
이 소설 인기 대박이다.
두 권의 문집에 실렸다.
경쾌한 듯 한 소설로, LOOSER들을 애정을 가지고 감싸 안아주는 이야기.
병으로 일찍 죽은 주인공이 귀신이 되어, 자신의 유품인 소파를 친구들이 서로 가지려고 쟁탈하는 것을 따라다니는 여정을 쓴 소설.

백가흠 -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소문이 단련된다는 표현의 제목부터 흥미롭다.  한 지방의 소읍에서 연달아 사라진 두 여성의 행방으로 커져만가는 소문들.  그 소문의 흐름과 허풍성을 풍자하며 또한 그 소문이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일으키는지 잔인하게 폭로한다.  또 소문에는 발도 없고 상상력의 제한이 없음을, 또한 진실성 또한 결핍되어 있음을.  그래도 진실이 왜곡과 뻥튀기가 되어있긴 해도, 소문이란 진실을 토대로 시작되었기도 한 것 같다.  다만, 그 왜곡과 뻥튀기가 본질을 너무 훼손했지만.

서하진 - 침이 마르는 시간.
시나몬 스틱 다음으로 처음으로 부유층이, 혹은 부유층 입장이 대변되는 소설이라 새로웠다.
최근들어 현대 문학이라는 것이 아웃사이더나, 고달픈 사람들만의 이야기만 하는 것만 봐서 그런지 돈있는 사람은 문학도, 감상도, 고민도 하지 말라는 건가 싶었다.
그런 면에서 "침이 마르는 시간" 은 부유층이 나오지만, 부유층이 주인공이 아니면서도, 그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는, 그러면서도 비판적일 수 있는 주인공이 나와 매우 신선하고 또 의미있게 다가왔다.  가진 사람을 욕하는 것은 쉽지만, 가진 자를 솔!직!히! 부러워하기란 사실 어렵다.  아니 부러함을 인정하거나, 부자의 존재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홍  - 50번 도로의 룸미러
또 다른 부유층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원하던 이상적인 행복을 얻은 듯 했지만 모든 행복에는 값이 매겨져 있듯, 주인공이 선택한 행복에도 함정은 있었다.  결국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선택들은 그녀를 오히려 자꾸 구석으로 몰아간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나가기 위해 새로운 함정을 파놓게 되버린다.  지금 당장 유아를 유기하면 당장의 문제는 해결이 되겠지만, 그 새로운 해답의 반발로 새로운 문제가 부상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거짓말을 거짓말로 덮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보다야, 지금 당장 아프더라도 꼬리를 잘라버려야 문제가 커지지 않는게 인생이 아닐까.  하지만 아마, 고통에 대해 과잉예민성을 가진 온실 속에서 자라난 현대 부유층들에게 문제의 해답은 눈가리고 아웅밖에 없다.

편혜영 - 동일한 점심
동일한 점심으로 대표되는 동일한 일상으로 인생을 만족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일탈 그 자체는 스트레스가 된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각의 전철을 같은 자리에서 타는데, 하루는 매일 같이 같은 전철을 타던 사내가 달려오는 전철 앞에 뛰어든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주인공의 일과는 꼬이는 데, 이 하루의 일과를 통해 그의 일상의 평온함에 그가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지, 또 그가 은근히 자극을 원했었을지 몰라도, 막상 그런 자극이 생긴다면 그가 그런 자극을 감당하는것이 얼마나 힘든지 깨달을 수 있다.   마지막에 그가 지하철 화면으로 확인하는 부분에서 신문을 읽다가 전철에 뛰어든 사람이 사실은 일탈을 꿈꾸던 자신이고, 그 사람이 던진 신문을 받아들은 주인공은 그 일탈의 결과를 뒷감당해야하는 현실의 자신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즉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지루한 나날에 조금 불만감을 가졌다가 그것을 뒤집을 만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 들뜨면서도 피곤한 몇주가 되어가고 있어, 충분히 공감했다.  별 일 없는 일상이란 것.  그것 참 대단하다.

황정은 - 대니 드비토
황정은 작가는 조금 환타지적인 것을 좋아하나보다.
오뚝이와 지빠귀란 소설을 읽었을 때도 참 특이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번 소설은 좀 덜 희한했다.  나는 대니 드비토의 이름을 궁금해 하다가 내가 죽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죽어서 원령으로 남편 곁을 지키기를 소원했고 또 죽고 난 후 소원을 성취했다.
남편이 재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두번째 아내의 죽음까지 살아남고, 몸이 늙어 신체불편한 병까지 앓다가 죽을 때 까지 옆을 지키는 동안, 그녀는 대니 드 비토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녀가 남편의 죽음과 함께 자신도 원령으로 남지않고 사라지길 원했을 때 그녀는 그 이름이 떠오른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원을 해소했을 때야 대니 드 비토라는 해답을 구하는 것이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