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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시.

한국 현대 소설에 나오는 인간말종에는 영화감독이 있다

최근들어 한국 단편 소설 묶음집 세권을 가까운 시일내에 읽게 되었다.
한권은 99% - 2008 제 53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또 한권은 현장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9.
마지막 한권은 이효석 문학상 수상 작품집 2009.

아 그리고 또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라는 책도 읽었다.

자기전에 하루에 한편에서 두 편정도씩 읽어대고 나니, 어느 작가가 뭘 썼는지도 모르겠고, 타이틀과 이야기 내용 매칭하기도 어려워졌다.   다만 다들 앞장에 사진들을 붙였는데 프로필 사진이 같은 것이 자꾸 나와 얼굴만은 길가다가도 알아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만...

헌데 4권이나 읽다 보면, 반복되어 나오는 작가들에게서 가끔 그 작가의 특징 혹은 테마가 조금 파악이 되는 것 같다.
특히 윤성희 작가의 "웃는 동안"과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 두 작품은 순간 같은 작품을 읽는 줄 착각 (나중에 생각해보니 심각한 착각이었지만, 문체도 같으니 헷갈릴 수도 있다라고 혼자서 위안을 해본다)을 했을 정도다.  

 반대로 책 네권에 모두 다른 단편 4권이 실려있는 김애란 작가는 동명이인인가 싶게 감상이 다르게 다가오는 작가도 있다.

헌데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인데도 불구하고 몇 편의 단편에서 찾은 공통점은 영화인은 다들 쓰레기로 나온다는 것이다.
한 때 영화쪽에서 일을 잠시나마 해본 사람으로서는 그게 한없이 안타깝고 조금은 화가 나기도 한다.   잠깐 언급되거나, 혹은 주인공의 남편이나 애인으로 나오는 영화인은 항상 한심하고 이기적이고 나르시스트이고 미성숙해서 주인공에게 폐를 끼친다.  특히나 주인공이 영화 쪽에 각본작업을 참여한 사람으로 나올 수록 영화 일을 하면서 받은 상처와 싸우느라 힘들어 보인다.  그런 글을 볼 때 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감수성이 풍부한 문학인은 언뜻 보면 같은 예술계의 영화쪽에 잘 융합될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반예술, 반오락인 영화업계는 순수 예술인에게는 잔혹한 사회일 것이라는 것.
문학사회는 어떤 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순수 예술이 절대 아니고, 따라서 사람들도 감수성이 풍부하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관계가 확실하기도 하다.  또 프로젝트 개념이 강한 영화업계는 영화가 진행되고 있을 당시에는 매일 가족처럼 지내다가도, 끝나면 바로 그 다음 영화에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지내며 전 가족과의 관계가 뜸하거나 끊기더라도 섭섭해 하지 않는다.  모두 새로운 관계를 만드느라 바쁜 것이다.  마치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단짝이던 친구도 새로운 반편성이나, 새로운 학교로의 진학으로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처럼.  물론, 계속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새로 전학 온 사람이 새로 관계를 이루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단편영화나 연극만 계속 하던 사람, 혹은 음악 쪽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 상업 영화에 뛰어드려다가 뜨거운 것에 데이듯이 상처입고  후퇴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상업영화 한 편당 그런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  영화도 그 본질은 예술이 포함되어 있기에, 예술적인 마인드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이 많다.  허나 영화의 현장은 단순히 공업 시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나마 방송보다는 조금 덜 하다고 해도, 영화도 결국은 영화라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예술을 실천한다는 자긍심도 있으면서도 자신의 이속과 본능에 충실한 인간들의 집합에서 인간에 대해 불신이 안 생긴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같이 다 그렇지만도 않은데, 훗날 사람들이 문학만으로 현대 세상을 그린다면 영화쪽 사람들은 모두 다 머저리로 남을 것 같아 씁쓸하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