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짧은글 모음

A punch to my right.

"퍼억"
가슴이 벌렁벌렁거린다.  콩닥콩닥이 아니라 벌렁벌렁.  결혼 3년째, 드디어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곰군에게 맞았다.  그것도 오른쪽 눈을 주먹으로.  만화에서는 다들 펀치를 맞으면 깜깜한데서 별이 보이는 것 같던데, 자다가 봉변을 당한 나는 별이고 뭐고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바빴다.  확실히 아프다.  꿈은 아닌거 같은데...왜?...놀란 가슴은 도저히 진정을 할 기미가 안 보인다.  자는 동안 잔잔히 뛰고 있던 심박과 긴장이 풀어져 있던 몸의 모든 근육들이 전쟁태세로 돌아섰다.  정신만 아직 꿈에서 벗어나기 싫은 듯 상황파악을 게을리하고 있다.  아직 어둡다.  근데 진짜 왜?
답이 금방 돌아왔다.  "으...어...미안...............크으"....아?...미안하단다...그리고 10초도 안 지나서 들리는 코고는 소리.  웃기지도 않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게 이 말이구만.  시계를 보니 뒤척이다 잠든지 30분 좀 넘었다.
결혼 준비하면서 침대를 구입할 때 특King Size를 고집하는 곰군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방 하나에 침대 하나 들어가고 나면 사람 설 자리도 모자랄 것 같았지만,  체구가 남들보다 더 큰 곰군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한수 접고 들어갔었다.  매트리스도 최상급으로 고집하는 곰군을 보면서 이건 좀 아닌거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저 하자는 대로 했다.  결혼하고 일주일도 안 지나서 곰군의 배려가 고마워졌다.  잠버릇이 특별히 아주 고약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였다.  헌데 덩치와 무게가 있다보니, 한번 움직이면 그 최상급 메트리스에서도 옆자리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울렁임이 있었다.  거기다가 역시나 그런 체형의 모든 아저씨들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인 코골이는 저음으로 넓게 방에 울려졌고, 가끔은 수면무호흡증으로 인해서 옆사람을 깜짝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적응을 하려 했지만 결국 해결책은 하나 뿐이었다.  먼저 잠들어버리기.  예민하다고 할 것 없는 나였지만, 곰군이 자고 있는 동안 잠들기는 꽤나 고달팠던 것이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자, 이제는 곰군이 잠이 모자라 힘들어했다.  알고 봤더니 잠버릇이 고약한 건 내쪽이였고, 예민한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던 곰군이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둘 사이의 간격은 멀어지고 급기야 그 큰 침대의 중앙은 텅 비워놓고 둘 다 양쪽 끝에서 메달리듯이 자게 되었다.  부부가 가장 밀접하게 붙어 있어야 하는 곳이 침대일텐데, 팔베게 베고 서로 합창하듯이 숨을 내쉬며 평화로이 잠을 자는 영화같은 장면은 영화이니까 가능한 것이었나보다.  자는 동안 어찌 외로움을 알겠냐만은 손마저도 잡지 않고 자는 부부는 낮에도 어색한 사이가 됐다.  매트리스 중앙이 산 같이 올라오고 침대 양끝이 사람의 무게로 쳐지고 있던 2년째 쯤 자는 시간 까지 서로 엇갈리기 시작했다.  그 큰 침대도 둘이 같이 자기에는 너무 비좁았던 것인지, 서로 자는 시간이 엇갈리자 그제서야 자고 나서도 잠을 잔 것 같이 피로가 풀렸다.  그러던 중 낮에 할 일이 있어 뒤늦게 억지로 밤에 잠을 청하던 내게 오늘, 방금과 같은 불의지변이 생긴 것이다.  아무래도 혼자 자는게 익숙해진 누구가 마음편히 뒤척이며 자다가 휘두른 팔에 불쌍한 내 눈이 걸려든 것 같았다.  누워서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억울한 마음에 슬퍼졌다.  화를 내고 싶은데, 화가 아니라 서러움이 치밀었다.  괜히 한대 맞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3년 내내 친밀함을 쌓아 올리기는 커녕 서먹해지기만 하는 상대방과의 스킨쉽이 이제는 저 펀치 하나로 마침표를 찍은 것 같아서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다.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잠결에 내뱉고는 다시 코를 고는 것인지 숨을 쉬는 것인지 분간 안 가는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내는 곰군이 얄밉고 그리워서 몸을 돌렸다.  잠이 확 깨버렸으니, 약이 올라 왠지 깨워서 괴롭히고 싶어졌기도 했고, 그 넓은 품을 비집고 기어 들어가 확 울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너무나도 쌕쌕 자는 그 모습에 그 서러움마저 어이를 잃고 타이어 바람 빠지듯이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쳇, 맞은 눈에 시퍼런 멍이라도 들어서 한 달내내 달고 다녔으면 좋겠다.

'짧은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화 - 1  (0) 2011.06.27